02.28.2026.

사진찍느라 마음을 뺏기고 집중하지 못하는걸 너무 싫어해서 진짜 마음에 드는게 아니면 카메라를 꺼내지 않는데 늘 마지막 장면은 몇번이고 뒤돌아보다가 몇장이고 다시 찍게된다.


02.27.2026. Claude Monet, The Water Lilies

흐린 눈으로 본 듯한 장면, 기억 속의 그 장면은 그 어떤 날이라도 될 수 있다. 언제인지 모를, 보았던 것 같기도, 앞으로 보게 될 것 같기도 한, 무언가 좋기도 슬프기도 한 그 장면이 그대로 멈춰있다.

모두가 방을 채운 캔버스 속, 모네가 담고 싶었던 연못과 수련에 집중하고 사진을 찍고 이야기하는 걸 보며 새삼 진짜 연못과 수련 앞에서 그러진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처음에는 캔버스 속의 수련을 보다가 수련을 보는 내 생각을 보다가 이제 수련을 보는 사람들을 본다. 수련을 보러 온 것이 즐거운지 수련을 보러온 자신을 사진에 담는 것이 즐거운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누군가의, 한사람의 표현과 시선은 참 덧없으면서도 놀랍도록 매력적이다.

마지막으로 캔버스 속 멈춘 장면따라 한강변 따라 산책하듯 천천히 걷다가 나간다.

02.25.2026.

여행할 때만큼 내 모습에, 내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드러나는 내 모습에, 순간마다의 선택에 집중하게 되는 때는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이방인으로, 낯선 사람으로 이곳의 배려하는 법을 배워가는 일은 짧은 시간에 버겁다. 먼저 웃음과 열린 마음을 보여주는 것만큼 어려운 게 없다. 그래서인지 무관심하고 경계하는 사람들 사이 누군가의 웃음을 발견할 때 어떤 풍경이나 건물을 보는 것보다 몇 배는 행복하다.

결국 돌아볼 때 여행 참 잘 왔다 싶은 것은 그런 것들 때문이다.

02.24.2026. Orsay, Paris

내게 미술관의 모양

사진으로 담기보다는 마음으로 담기를 애쓰고 원하는 편이다.

유명하고 좋다는 작품 10개를 보려 한시간을 돌기보다 큰 이유 없이 시선을 끌었던 작품 앞에 한시간을 서있다가 서성거리다 오고 싶다. 정리된 현학적인 해설에 귀기울이기보다 내 눈으로 이곳저곳을 훑어가며 작가가 대상을 보며 느꼈던 것, 그리고 싶었던 것, 말하고 싶었던 것에 귀기울이고 싶다. 굳이 기록한다면 모두가 찍어도 비슷할 사진보다는 나의 언어로, 나의 그림으로 기록하고 싶다. 더이상 소화할 필요없는 나의 언어, 나의 느낌, 나의 기억을 간직하고 어딘가에 보여줄 필요도 없이 소중한 그 무언가를 가지고 돌아가고 싶다. 

여행이나, 미술관이나, 일상이나 결국 매한가지다.
남들 좋다는 거 따라 살든가, 내가 좋아하는 걸 찾아 헤메던가. 오늘도 그 중간 어디에 있다.

02.19.2026. Tate Britain, London

David Hockney, A Bigger Splash, 1967

빈칸을 잠시 채워두는 일

여행에서 유명한 곳, 남들이 좋다는 곳, 내 사진을 보여줄만한 곳은 빈칸을 잠시 채워두는 것 같다.

시작하기에 좋은 것이면 사실 무엇이든 좋고, 무엇이어도 상관없다. 도시의 중심에서 시작하던지 강의 시작점에서 시작하던지. 시작하는 것, 첫번째 도착지를 정하는 것이 중요한 것, 나중에는 어디서 시작했는지가 가장 중요한 것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그냥 시작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거지.

여기에서나 거기에서나, 어차피 마주하게될 중요한 질문은 지독하게도 익숙한 것들이다.

무엇을 보게 될 지, 누구를 만나게 될 지, 내 마음이 무엇에 반응하고 공명할 지에 대한 무지, 해야만 하는, 정해진 무언가를 따라가는 일이 아닌 그저 할 수 있는 것 중에 나의 작고 보잘것없는 이유를 더해 선택하고 책임져야하는 무게감.

미처 떼어놓고 오지 못한 지독하게도 익숙한 무언가, 그리고 익숙해지지 않는 무지와 그 가운데서의 선택, 그렇게 시작한 무언가가 어느 순간에 의미를 갖게 될 때의 경외와 즐거움. 그리고 점차 가빠지는 호흡에 한 걸음을 띄는 것에 집중하는 것 밖에는 하지 못하게 될 때 역설적으로 해소되는 무게감. 그러다가 마주친 뜻밖의 사람, 느낌이 주는 찰나의 울림과 행복.

여행해서 좋다. 새로운 곳으로 떠나서 좋다. 익숙한 곳으로 돌아가서 좋다. 그 매일의 하루를 사는게 좋다.